| 초록 |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 (77여)씨 가족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번 판결 이후 각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환자보호자의 요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만도 세 명의 환자 보호자들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해 긴급 생명윤리위원회를 소집한 바 있다.
최근 한국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행하는 환자 중 만성신부전으로 투석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5.3%임을 보고한 바 있으며, 투석을 담당하는 의사 중 절반가량이 1년에 1회 이상 투석중단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외국의 문헌에서도 투석중단의 비율이 국가마다 다르지만, 평균 5-20%를 보고하고 있으며 이는 적지 않은 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없이 투석치료중단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장내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보고에서 의식이 명료한 환자가 투석중단을 요구하는 경우 19%가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으며, 치매환자의 보호자가 투석중단을 요구하는 경우 28%가 투석중단에 찬성하였으며, 식물상태의 투석환자에서는 69%가 투석을 중단하겠노라고 응답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여 투석환자에서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투석 시작시점에서 환자에게 향후 투석중단에 대한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53%로 찬성의견인 33%보다 오히려 높았다.
말기환자에서의 연명치료중단에 대해서 의사로서 먼저 고민해야할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연 이 환자는 전혀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인가?
둘째, 과연 이 환자는 스스로 투석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의사표시를 하였는가?
셋째,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느 정도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생명윤리의 4대원칙은 자율성존중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며, 이 중 환자의 자율성존중의 원칙은 악행금지의 원칙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우선적인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즉, 환자가 모든 시술을 함에 있어서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에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인 것이다. 암환자가 수술을 받을지, 항암제주사를 맞을지, 아니면 타병원에 갈지, 이 모든 결정은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결정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이다.
인간에게는 분명 살고 싶어하는 의지 (리빙윌)가 있다. 물론 때로는 죽고 싶은 생각 (다잉윌)이 들 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중에서 리빙윌이 우선된다. 대전제는, 인간은 살 의지가 우선된다는 것과, 생명을 중단할 결정권이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리빙윌에 반하는 결정, 다시 말하면, 다잉윌을 따르는 결정을 내려야할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문헌을 종합하여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필자는 투석중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고자 한다.
1. 가급적 투석 시작시점에서 본인이 명료한 의식 하에서 향후 투석중단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2. 미처 사전의사결정서가 준비되지 못한 경우 회복 불가능하거나 점차 더 악화되는 경우에 보호자와 충분히 상의하여 투석중단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3. 회복불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분명치 않은 경우는 병원 내 생명윤리위원회에 3. 의뢰하여 2명 이상의 의사 및 전문위원들이 판단하도록 한다.
4. 본인의 의사가 명확하다 할지라도 치료의 부작용이나 정신적인 문제 때문인지 세심하게 관찰하여야하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상담을 하도록 한다.
5. 질환 이외의 경제적 문제나 가족 간의 관계 등의 문제인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사회복지사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며 필요한 경우 성직자를 통해 종교적 도움을 받도록 한다.
6. 투석치료 중단을 결정한 뒤에도 수액 및 영양공급 등 기본적인 치료는 지속되어야 하며 환자상태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7. 가능하면 투석치료 중단 이후에는 호스피스 케어를 받도록 하며, 집에 머물기를 원하는 경우 가정 호스피스를 제공하도록 한다. |